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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동사니
유로파 유로파(1990), 전쟁 중 혼자 남은 소년이 살아남는 법 본문
독일의 한 가정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히틀러의 생일이기도 했던 그날, 아기는 랍비의 축복 기도 아래 유대교 의식 중 하나인 할례를 받습니다. 할례를 받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진정한 유대인으로 규정되며,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이 뿌리 깊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유대인이라면 응당 하는 이 할례가 이 아이의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게 될지 이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늘은 전쟁의 폭풍우가 몰아치던 유럽, 가족과 흩어져 홀로 남게 된 10대 유대인 소년이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유로파 유로파'를 포스팅해보려 합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나치 치하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실제 인물 솔로몬 페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보다 더한 한 인간의 일대기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산당원에서 독일군 전쟁 영웅까지... 이 소년이 생존하는 법
주인공 솔리('솔로몬'이라는 이름의 애칭, 마르코 호프슈나이더 分)는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솔리의 가족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사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으나, 나치가 득세하고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중 솔리의 누나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솔리의 부모님은 솔리와 형 이삭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살게 하기 위해 두 아들을 폴란드로 보내나, 솔리는 피난길에서 형과 그만 헤어지게 되는 비극을 맞습니다.
홀로 남은 솔리는 폴란드 동부의 한 고아원으로 보내지는데, 이 고아원은 버려진 고아들을 대상으로 소련의 공산주의를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똑똑했던 솔리는 뜻하지 않게 '위대한 스탈린'을 외치며 스탈린의 사상에 잘 적응합니다. 열성적인 공산주의자로 성장하고 있던 그때, 마침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게 되면서 솔리는 독일군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스탈린은 그가 유대인임을 개의치 않아했지만 히틀러는 달랐습니다. 독일군들에게 그가 유대인임을 들키면 그는 죽은 목숨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기지를 발휘해 유창한 독일어 실력을 이용, 본인이 순수 아리안임을 주장하였고 독일군은 그의 뛰어난 독일어 실력에 그가 독일인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솔로몬은 이후 부대 내에서 러시아어 통역병으로서 신뢰받게 됩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자꾸 운이 따라붙었던 솔리는 전쟁 중 의도치 않게 했던 행동이 독일군이 승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고, 부대 사령관의 추천으로 독일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리는 이 화려한 곳에서 인생 최고의 고통을 맛보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정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깊은 뿌리의 굴레
독일 학교(히틀러 유겐트)에 입학한 솔리는 '전쟁 영웅'으로서 이미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합니다.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였죠. 솔리는 친한 친구는 물론, 여자 친구 레니(줄리 델피 分)도 만나게 됩니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될 듯했지만 이곳은 독일이었고, 그는 독일어를 잘하는 유대인에 불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국가에 충성하는 인재 양성 교육과 함께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반유대주의를 주입시킵니다. 유대인을 괴물과 같이 묘사하던 한 선생은 솔리를 교실 앞에 세워두고는 그의 눈 색깔, 머리 색깔이 순수 아리안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아리안이 가진 특징이라며 단언합니다. 본인이 그토록 혐오하는 유대인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지만, 솔로몬이 당시 느꼈을 긴장감은 어땠을까요.
본인의 뿌리를 혐오하며 부정하며 사는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여자 친구 레니를 속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레니는 유대인을 끔찍이 혐오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여성으로서 순수 아리안 아기를 낳아 국가의 일꾼으로 키우는 것)을 제일로 여기는, 철저하게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세뇌된 사춘기 여학생이었습니다. 솔리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그와 보다 더 깊은 관계를 원했지만, 솔리는 차마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습니다. 그의 은밀한 그곳이 그가 누군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말기 때문이죠. 나치 치하 살아가는 유대인으로서 위기의 순간마다 매번 의심받아야 했던 그의 바지 안쪽은 그렇게 피와 눈물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에게 평안의 시간을
레니와의 일 외에도 위기의 순간이 여러번 솔로몬을 찾아옵니다. 괴로워하던 그에게 하늘은 또 한번 기회를 줍니다. 소련군이 베를린을 침공한 것입니다. 전선에 투입되었던 그는 다시 한번 모습을 바꿉니다. 원래 본인의 정체성인 유대인 '솔로몬 페렐'로 돌아간 것이죠. 본인은 독일군이 아니며 유대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휘말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사정해보지만 소련군은 믿지 않습니다. 소련군은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해방된 유대인 한 명에게 총을 주며 그를 쏘라고 합니다. 총에 맞기 직전 절체절명의 순간, 또 한번 기적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과연 이번엔 누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까요?
결과적으로 그는 살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수많은 역할들을 해야 했습니다. 열성적인 공산주의자에서부터 자신의 뿌리를 적으로 보는 독일을 위해 싸우는 젊은 병사 역할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죠. 하지만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이고 불운한 상황 속에서, 유대인이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그는 본인의 능력을 이용하여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나치가 점령한 유럽 그 어디에서도 유대인은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생명조차 담보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그는 그저 생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영화 역시 그의 발자취에 대해 부정적이랄지, 긍정적이랄지 특정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서 다행이라는 정도의 안타까운 시선만 있을 뿐이죠. 그가 평화로운 삶을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생존이 목적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을 즐기며 잘 살았길 바라며 오늘 글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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