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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싱 영 우먼(2020), 창창한 미래를 가질 수 있었던 그녀들을 위하여 본문

영화 리뷰

프라미싱 영 우먼(2020), 창창한 미래를 가질 수 있었던 그녀들을 위하여

이탠저린 2022. 1. 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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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올해 2022년 처음 감상할 영화로 2020년작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을 선택했습니다. 영화가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주연인 연기파 배우 캐리 멀리건과 감독인 에메랄드 펜넬은 모두 1985년 태어난 젊고 유망한 여성 인재들인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성폭행'이 가지는 파괴력과 잔인함, 고통에 대해 두 인재가 매우 섬세하게 잘 다뤄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프라미싱 영 우먼 공식 포스터

 

친구를 위해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 그녀

-주인공인 캐시(캐리 멀리건 分)는 한때 의대를 다니는 재원이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학 동기인 니나에게 생긴 불미스러운 일로 의대를 그만두었습니다. 친구인 니나는 결국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고, 캐시 역시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아 전과 다르게 시니컬한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죠.

 

-이야기인즉슨, 니나는 대학 시절 술을 먹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동기 남학생인 알(크리스 로웰 分)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알의 친구들은 그를 말리지 않고 그를 추켜세우거나 방관합니다. 사건 이후 가해자인 알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혐의에서 물러나고, 의대 학과장은 '미래가 촉망되는 청년(A promising young man)'인 그에게 매우 포용적입니다.

걸리면 누나한테 크게 혼난다.

-정작 피해자인 니나의 이야기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그저 가십 대상으로만 소비될 뿐입니다. 비상한 머리로 과 수석이었던 니나는 더 이상 그녀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됩니다. 캐시는 소중한 친구가 고통받고 있을 때 힘이 되어주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를 이렇게 만든 주변인들과 세상을 향해 그녀만의 복수극을 시작하게 되죠.

 

-의대를 자퇴한 이후 그녀는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세상을 향한 복수극을 벌입니다. 늦은 시간 술집에서 인사불성인 척 연기를 하면 반드시 그녀에게 '다른 목적을 가진' 남자들이 다가옵니다.  그들은 그녀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땐 검은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다, 그녀가 멀쩡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좋은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그럼 왜 그녀가 멀쩡한 상태일 때 당당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녀는 그 남성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거나 때로는 더한 벌을 줍니다. 그 벌이 무엇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이때만 해도 행복해질 줄 알았지

-한편 의대 동기였던 라이언(보 번햄 分)이 등장하면서 캐시의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의대 시절부터 그녀를 좋아했다는 라이언은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종종 찾아오며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남자들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린 시니컬한 캐시지만, 그의 간곡하고도 정중한 구애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죠.

 

-캐시는 라이언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대학 동기들의 근황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니나가 성폭행을 당한 직후, 같은 여성이면서도 니나의 말을 믿지 않고 가십의 대상으로만 여긴 메디슨이 아기를 낳고 산다는 이야기, 강간 산건의 가해자인 알이 한 여성과 결혼을 앞두고 설렘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 등... 남들 다 하는 것들은 다 하며 평범하게 사는 동기들의 근황 이야기들은 그녀의 가슴에 다시금 큰 불을 집힙니다.

 

 

그래도 한 번씩 기회는 더 준다

어쩜 넌 그대로니 친구야

 

-캐시는 동기였던 메디슨, 의과대학 학과장, 사건 당시 가해자 알을 변호했던 변호사를 만나러 나섭니다.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캐시지만, 그녀는 당장에 그들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생각이 변화가 있는지, 반성은 했는지 확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니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변화가 느껴지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이는군요.

 

-여전히 큰 짐을 등에 지고 사는 듯한 캐시에게 니나의 어머니는 이제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고, 앞으로의 삶을 살라고 충고합니다. 딸 같은 캐시가 이제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진정으로 해준 말이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캐시는 이전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에게 지극 정성인 라이언과 연애도 하고, 자신 때문에 속 태우는 부모님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드리기도 하죠.

 

끔찍한 과거와 다시 맞이해야 하는 캐시

-한편 캐시에게 호되게 혼난 메디슨이 캐시 앞에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그녀는 캐시에게 다시 연락하지 말라면서도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한다며 한 영상을 캐시에게 전해줍니다. 그건 니나가 과거 성폭행을 당할 당시 가해자인 알의 친구인 '조'가 찍은 영상물이었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상황을 분명하게 직시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과거. 그녀는 결국 그 영상을 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영상 속엔 그녀가 생각지 못한 더 끔찍한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장래가 촉망되니 봐줘야 된다고요?

누구는 세상을 떠났는데, 배려 받은 가해자는 결혼을 앞두고 행복에 젖어있는 중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질러 형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사회가 위로랍시고(?) 하는 전형적인 말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앞날이 창창하다는 둥, 장래가 촉망된다는 둥 하면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밝은 미래를 망쳐선 안된다는 말들이죠. 형을 살지 않더라도 혹여나 형을 살게 될까봐 최대한의 기회를 주려는 게 현실이죠.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익숙한 모습인데요, 죗값에 대해 얄짤없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영화에서 가해자 알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의 여성을 강간하고도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법조 망을 교묘히 피해 혐의를 피하고, 학교에서는 의대에 다니는 똑똑한 학생의 미래를 짓밟고 싶지 않다며 일을 굳이 키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가해자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동안, 피해자가 가질 수 있었던 '창창한 미래'는 상대적으로 무시당합니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정작 남의 삶을 박살 내놓고도 장래가 촉망된다는 등의 이유로 포용적인 대우를 받는 가해자 남성들에 비해, 촉망 받는 삶을 가질 가능성을 박탈당한 피해자 여성들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방조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영화 제목이 'Promising Young Woman'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통 쓰는 영어 표현인 'Promising Young Man'이라는 표현, 즉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중엔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들도 있다고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이죠.

 

왜 늘 미친 척이라도 해야 말을 알아듣는 거죠

-프라미싱 영 우먼은 골든 글로브 및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시상 후보에 오르고 몇가지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성 있고 호소력 있는 작품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하니 시간 나시면 꼭 한번 감상해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후회 없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참, 캐리 멀리건을 잘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2005년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키티 역의 귀여운 말괄량이로 데뷔했고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그토록 집착했던 여성 데이지 역할을 맡았던 여성 배우를 생각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볼 때마다 성장했음이 느껴지는 엄청난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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