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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동사니
매혹당한 사람들(2017), 이 죽일 놈의 욕망! 본문
영화 포스터가 너무 예쁘지 않나요? 전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본 순간부터 포스터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에 매혹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 포스팅할 영화는 호화로운 캐스팅이 돋보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입니다. 여성 감독이 찍은 여성들의 이야기, 보기 전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력
이전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작품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희대의 악녀' 또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여러 평가가 있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저는 한국의 '장희빈'이나 영국의 '앤 불린'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사극 연출을 기대했었는데요, 제 기대와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영화 분위기에 살짝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느끼기에 영화 속 카메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순진한 마리 공주가 타국의 낯선 왕궁에서 외롭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영화를 꽤 좋아합니다. 옛 유럽의 화려한 궁정 생활을 아주 디테일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섬세한 시각적 연출에 매우 진심인 감독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 인물들의 행동 변화 속 감정 변화에 대해 영화는 아주 친절하게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관객 스스로가 노력해서 그걸 추측해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있어 잘 와닿지 않는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분위기랄지, 실제로 있었을 법한 보수적인 여학교의 모습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가보지도, 겪어보지도 못했던 당시 그곳의 냄새나 습도가 영화를 통해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전 앞으로도 이 감독의 영화는 믿고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등장인물
이 영화는 매우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하는데요, 여자 신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마사' 역할을 맡은 니콜 키드먼과 교사 '에드위나' 역을 맡은 키얼스틴 던스트, 도발적이며 당돌한 10대 소녀 '알리시아' 역의 엘르 패닝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욕망을 깨울 '존 맥버니' 상병의 역할로 콜린 퍼렐이 캐스팅되었습니다.
학교의 대표이자 가장 큰 어른인 교장 마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본인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전쟁 중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가장 이성적이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학교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차분하며 단정한 성품의 프랑스어 교사 에드위나는 이런 교장 선생님을 믿고 잘 따르는 모습을 보이며, 교장과 함께 학생들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에 남은 5명의 학생들은 이런 학교 시스템에 잘 순응하는 편이나, 세상과 단절되어 깊은 숲 속 학교에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10대 학생들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알리시아는 선생님의 권력에 대놓고 반항하진 않으나 똑같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을 매우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여느 10대 소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죠.
금남의 구역에 나타난 이 남자
남북 전쟁이 한창인 시기, 부상당한 존 맥버니 상병을 숲 속에서 발견한 어린 에이미는 그를 부축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여자 신학교로 데려갑니다.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숲 속에 위치한 낡은 학교는 마치 환기가 되지 않는 집처럼 공기의 순환이 되지 않아 유독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군인 북군 존 맥버니 상병은 막힌 집의 창문을 깨고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공기가 이 공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죠. 집의 주인들은 창문이 뚫려버리자 크게 놀랐지만 차분히 대응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동요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적군이자 남성이며 불청객인 그는 평소 같았으면 경계와 공포의 대상이었겠지만, 다리에 부상을 당한 그는 여성들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적군인 그를 아군에게 보내버려야 된다고 서로 씩씩하게 얘기하면서도, 평범한 그의 이름 'John'이라는 소리가 주는 신선함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그가 부상을 치료하며 혼자 머물고 있는 음악실을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그의 안부를 묻거나 도움을 제공하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가 학교로 온 후 왠지 모르게 착장에 더 신경을 쓰고, 더 생기를 가진 모습입니다. 늘 수수하며 단정한 모습의 에드위나마저 평소 착장에 포인트를 주어 교장 마사가 발견할 정도였으며, 한 학생은 에드위나의 귀걸이를 몰래 빼서 착용하기도 하죠. 교장 마사는 부상당한 그의 몸을 씻어내고 부상을 치료해주는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그가 외부인임을 강조하는데,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교장으로서 가장 이성적인 어른의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마사는 학생들과 에드위나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묘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교장이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그를 자주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눈 만큼, 그녀의 마음속에 어떤 형태로든 그가 한 자리를 차지했음은 분명합니다.
존 맥버니 상병은 이 학교 여성들의 도움과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점점 즐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곳에 온 초기에는 학교의 여성들이 본인을 남군에 넘길까 봐 불안해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곳 여성들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이곳에 머물려합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감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부상이 나아감에 따라 그의 욕망의 크기는 비대해져 갔던 것이죠. 하지만 약간의 움직임에도 삐걱 소리를 내는 이 낡은 학교에서 완벽한 비밀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이 학교에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스릴러
솔직히 말하자면 전 이 영화를 보면서 몇번 웃음이 났습니다. 부상당한 적군 존이 이 학교에 온 이후 교내 여성들에게 생긴 성적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가 매우 진실하고 솔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정숙한 교사 에드위나의 변화가 전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져 그녀에게 유독 애정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모든 인물들의 반응을 매우 차분하고도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우아하게 담아낸 이 영화가 매우 맘에 듭니다.
영화를 다 보고 느낀 사실이지만,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는 배경 음악이 깔려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뒤에 깔리는 숲 속 자연의 소리나 삐걱거리는 낡은 학교 건물의 소리, 여성들의 움직임이 내는 소리를 차분하게 따라가 보시길 바랍니다. 일반적인 스릴러물과는 또 다른 느낌의 아름답고 우아한 스릴러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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